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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국내 역사 사회 이야기

위화도 회군의 한 장수 조민수

by 쉼표 하나 2018.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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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의 한 축인 장군

 

조민수(曺敏修)는 고려 말의 무신, 군인, 정치가이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상도 창녕이며, 조민수의 가문은 크게 권력을 휘두르는 집안은 아니었다.

조민수는 홍건적, 여진족, 왜구와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이루면서 고려의 주요 장군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이인임(李仁任)과의 인연이 출세의 큰 영향을 주었다.

 

이인임과의 인연

 

 

1388년 이성계와 함계 공요군(요동정벌군)의 좌군 도통사로 요동 정벌에 출정하였다가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였다.

 

 

 

이인임(李仁任)의 아버지의 사촌 누이의 아들이 배극렴과 조민수인데

조민수는 이인임이 자신을 천거해 준 은혜를 생각하여 이인임의 외형제인 이임(李琳)의 딸인

근비(謹妃)의 아들되는 왕창(王昌)을 세우려고 계획하였다.

장수들이 자기의 뜻을 어기고 왕씨를 세울까 우려해 당시 명망있는 유학자였던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의 도움을 받으려고 그의 의중을 떠보았다.

 

이색 또한 왕창을 옹립하려고 생각하였으며 조민수에게 '당연히 전 왕의 아들로 왕을 삼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성계가 조민수에게, 회군 때 했던 말은 어떻게 되었는가하고 힐문하자 조민수가 얼굴빛이 변하였다.

 

이성계와의 약속

 

 

하지만 조민수는 '이색이 이미 원자를 세우기로 결정했으니 어찌 어길 수 있겠는가'라고

변명하며 결국 창을 왕으로 옹립했다.

이렇게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우는 데 중요구실을 하여

충근양절선위동덕안사공신(忠勤亮節宣威同德安社功臣)에

양광전라경상서해교주도도통사(楊廣全羅慶尙西海交州道都統使)가 되었다.

1389년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을 반대하다가 조준(趙浚) 등의 탄핵으로 창녕에 유배되었다.

이해 창왕의 탄생일에 특사로 풀려 나왔으나, 우왕의 혈통을 에워싼 논쟁으로 이성계 일파에 대항하다가

서인(庶人)으로 강등, 1390년에 다시 창녕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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